댄 쿠퍼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Northwest Orient Airlines Flight 305) 하이재킹 사건 또는 댄 쿠퍼 사건(Dan Cooper's Case)은 1971년 11월 24일 미국에서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으로, 완전범죄이자 미국 내에서는 전설로 손꼽히는 하이재킹 사건이다.
범인이 사용한 이름인 '댄 쿠퍼'는 가명이었으며, 진짜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가명은 흔히 'D.B. 쿠퍼'로 알려졌고 현지에서도 이 쪽이 유명하나, 실제로는 '댄 쿠퍼'가 맞다. 'D.B. 쿠퍼'라는 이름은 사건 초기 경찰이 탑승객 명부를 바탕으로 동명이인을 수사하면서 유출된 이름으로, 실제로는 이 사건과 관계 없는 일반인이었지만 미국 언론이 계속 'D.B. 쿠퍼'라고 쓰는 바람에 유명해졌다.
1971년 11월 24일[1],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 한 남자가 댄 쿠퍼(Dan Cooper)라는 이름으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 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해당 비행기는 보잉 727-100 기종의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으로 36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쿠퍼는 비행기의 맨 마지막 줄 가운데 좌석에 앉았으며, 그의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9.11 테러 이전의 미국 국내선 보안은 지금처럼 치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는 그대로 납치범을 태우고 이륙했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난 뒤, 비행기가 운항 고도에 이르자 쿠퍼는 스튜어디스 플로렌스 스내퍼에게 메모를 건넸다. 처음에 스튜어디스는 쿠퍼가 추파를 던질 목적으로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네는 줄 알고 받지 않았으나, 쿠퍼가 읽어보라고 재차 강요하자 그제서야 받았다고 한다. 그 메모의 내용은 "자신은 폭탄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쿠퍼는 스튜어디스를 자신의 옆에 앉게 한 뒤, 서류 가방을 열어 다이너마이트 막대를 눈으로 확인시켜주었으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쿠퍼의 요구사항은 현금으로 20만 달러를 작은 배낭에 담아서 오후 5시까지 준비하라는 것이었으며, 여기에 앞으로 메는 낙하산 2개와 뒤로 메는 낙하산 2개를 요구했다. 또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바로 주유할 수 있도록 연료 탱크 차량을 대기시킬 것을 지시했다. 쿠퍼의 요구 사항을 전달받은 스튜어디스는 기장에게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렸고, 기장 역시 관제탑에 이 사실을 알렸다. 사건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경찰은 납치범의 요구사항대로 현금과 낙하산을 조달하여 시애틀 공항에 대기하였다.
저녁 5시 39분 비행기가 시애틀 공항에 착륙했고, 경찰은 준비해 둔 돈과 낙하산을 쿠퍼에게 전해주었다. 쿠퍼는 35명 승객 전원과 2명의 스튜어디스를 석방했다. 비행기에는 기장, 부기장과 4명의 승무원, 그리고 쿠퍼만이 남게 되었다. 당초 쿠퍼는 기장에게 멕시코시티로 갈 것을 요구했으나, 연료 문제로 거절당하자 네바다 주의 리노 국제공항을 경유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또한 랜딩 기어를 내리고 여압 장치를 끈 채로 최저 비행 고도[2]에서 실속 직전의 최저 속도로 비행할 것을 지시했으며, 객실에는 자신 이외에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는 스튜어디스를 비롯한 인질 모두를 조종실로 몰아넣었다.
쿠퍼는 마치 멕시코로 장거리 도주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사실 이 때부터 경찰과 승무원들은 쿠퍼의 요구사항을 듣고 그가 비행기 후미 계단(rear airstairs)을 통해 공중에서 뛰어내릴 것을 예상했다. 후미 계단은 객실 뒷쪽에서 지상으로 바로 내릴 수 있게 설계된 계단으로 보잉 727이나 DC-9 등 초창기 제트 여객기 중 일부에만 달린 문이었다. 비행기가 다시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8시 경, 승무원들은 갑자기 객실 기압이 급격히 낮아진 것을 발견했고, 8시 15분 경에는 꼬리날개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정말로 쿠퍼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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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당시를 재현한 GIF 이미지. |
비행기가 리노 공항에 도착하자 경찰이 기내로 들이닥쳤고, 예상대로 쿠퍼와 돈 가방, 그리고 낙하산 한 쌍이 사라진 뒤였다. 당연히 후미 계단으로 향하는 문은 열려 있었다. 또 기내에서는 쿠퍼의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와 넥타이가 발견되었고, 두 쌍의 낙하산 가운데 한 쌍은 기내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경찰은 남은 한 쌍이 레저용 낙하산인 것에 주의했다. 경찰이 건네준 것은 앞뒤로 메는 군용 낙하산 한 쌍과 마찬가지로 앞뒤로 메는 레저용 낙하산 한 쌍이었는데, 군용 낙하산은 일반인이 사용하기 힘든 데다 방향조정도 안 되는 모델이었지만 레저용 낙하산에 비해 굉장히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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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비행기의 항로. 시애틀에서 리노까지 갔으며, 붉은 점은 나중에 묻힌 돈다발이 발굴된 장소이다. 포틀랜드라는 도시가 있는 곳인데, 이 근처에서 쿠퍼는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 |
그날 새벽부터 미국 역사상 최대의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경찰은 승무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예상 낙하지점을 추측했는데 오리건 주 포틀랜드 북동쪽의 '기퍼드 핀쇼 국유림(Gifford Pinchot National Forest)' 지대가 가장 유력했다. 곧 숲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으며, 비행기가 지나간 항로를 따라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 수색도 펼쳤다. 또 루이스 강의 바닥을 뒤지기 위해 잠수정까지 동원했지만 쿠퍼는 물론이고 돈이나 낙하산마저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가 진전되지 않자 경찰은 쿠퍼가 잘못 뛰어내렸다가 그대로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쿠퍼가 뛰어내린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숲이 울창한 산림 지대였고, 당시 해당 지역은 뇌우가 몰아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가는 죽기 딱 좋았고 그는 하이재킹 당시 평범한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 착지했더라도 저체온증 등으로 오래 버티기 어려웠으리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게다가 그가 받은 돈 가방은 20달러짜리 지폐로 20만 달러를 준비했기 때문에 무게가 10 kg이나 나갔고 이는 낙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수색은 결실 없이 종료되었고, 그 뒤로도 쿠퍼를 두고 세간의 소문만이 무성했다.
그러던 1980년의 어느 날, 쿠퍼의 예상 낙하지점에서 60km 남짓 떨어진 컬럼비아 강 어귀 '티나 바(Tena bar)'에서 한 소년이 캠핑을 하다가 진흙 속에 묻힌 돈다발을 발견했다. 이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되었고, 경찰은 지폐의 일련번호를 대조하여 돈다발이 쿠퍼가 가져간 돈의 일부인 5,800달러임을 밝혀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쿠퍼가 살아남았으며, 나중에 찾아 갈 목적으로 돈을 숨긴 것이 아닐까[3] 생각했다. 경찰은 이후 컬럼비아 강 유역을 대대적으로 조사했지만 애석하게도 다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십년 간 이 사건과 관련된 어떤 단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당시 쿠퍼가 가져간 현금의 일련번호가 공개되었지만 아직까지 자금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 사건은 4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제로 남아 있다.
이후 미국에서는 하이재커나 영구 미제하면 쿠퍼를 떠올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때문에 창작물 등에서 이 사건을 패러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범인이 비행기에서 돈가방을 들고 뛰어내리는 과정을 패러디한다.[4][5]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몇몇 모방범죄들이 추가로 발생했지만 쿠퍼 이외에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모든 보잉 727 기종은 비행 중에 뒷문이 열리지 않도록 '쿠퍼 베인'이라는 장치를 달도록 개조했다. 또한 보잉 727 이후의 모든 기종은 처음부터 비행 중에 내부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리처드 매코이 주니어
미합중국 육군 항공준사관 출신. 사건 4개월 후, 쿠퍼와 똑같은 방식으로 유나이티드 항공의 덴버행 보잉 727기에서 납치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50만 달러를 챙겨 뛰어내렸다. 범인인 리처드 매코이 주니어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법 집행학을 전공했고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육군 그린 베레의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한 경험이 있었는데, 복무 당시엔 부상으로 퍼플 하트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체포 당시 맥코이는 아이가 둘이었고 몰몬교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D.B. 쿠퍼 하이잭 사건 당시엔 하이재커를 헬리콥터로 수색하는 임무에도 투입된 주방위군 소속 육군 준위였다.
이틀 후, 지문과 필체 덕분에 매코이는 체포되었고 45년형을 선고받았다. 매코이는 "당신이 정말 쿠퍼냐." 묻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감 후, 가짜 총으로 쓰레기 운반 트럭을 훔쳐타서 감옥의 정문을 부수고 탈옥했다. 이후 3개월간 도망다니다가 FBI 요원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당했다. 비슷한 수법과 지문, 필체의 일치, 몽타주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는 점 때문에 쿠퍼 하이잭 사건도 매코이가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FBI 조사 결과 하이잭 및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당시 라스베이거스와 유타주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확인하여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두에인 웨버
1995년 두에인 웨버가 죽을 당시, 부인 조 웨버에게 "내가 D.B. 쿠퍼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D.B. 쿠퍼에 대해 조사해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조는 D.B. 쿠퍼에 대한 책 여백에서 남편의 글씨를 발견했다. 또 두에인 웨버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악몽을 자주 꾸었고, "계단에 내 지문을 남겨놨어"라는 잠꼬대도 했다고 한다.
또 아내 조에 의하면 집에서 오래된 시애틀-타코마 공항행 비행기 티켓을 본 적이 있고, 남편과 시애틀에 여행간 적이 있는데 여행 내내 남편이 콜럼비아 강을 바라보며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FBI의 얼굴 인식 프로그램으로 두에인 웨버의 사진과 쿠퍼의 몽타주를 비교해보니, 사진 3천 장 중에서 두에인 웨버가 가장 일치한다고 나왔다 한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 외에도 위키백과에는 용의자가 여럿 소개되어 있다. 하나같이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도 동일하다.
낙하 직후 사망을 주장하는 쪽은 당시 기후[6]와 낙하지점[7]을 고려했을 때 차가운 물에 빠진 후, 그대로 동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고, 생존을 주장하는 쪽은 시신과 나머지 돈이 발견되지 않았고 5800달러가 발견된 곳이 예상지점과 꽤 먼 거리였음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사건 당시 몽타주를 보면 이미 40대에서 50대 사이의 중년이었고 그 상황에서 50여 년이 더 지난 이상 미국 남성의 평균수명을 훌쩍 넘긴 쿠퍼가 현재도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FBI는 45년 동안 이 사건을 수사해왔지만 끝내 2016년 7월 8일부로 수사를 중단했다. 이제는 범인의 정체는 영원히 알 수 없을 듯하다.
2018년 6월, 미국의 사설탐정 팀이 위에는 언급되지 않은 용의자 중 전직 조종사 로버트 랙스트로가 FBI에 보낸 편지를 46년 만에 다시 분석하여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장이고, 결정적으로 사건이 일어난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랙스트로와 쿠퍼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 FBI 측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그냥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을 다룬 책들이 수없이 나왔고 사건도 영화화되었다.
여러 미국 드라마에서도 사실 작중 등장인물 중 누군가 쿠퍼였다는 식으로 자주 언급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반전.
로키(드라마)에서 과거 회상으로 등장하는데, 쿠퍼의 정체가 바로 로키였다. 형이랑 내기에서 져서 지구에 가서 벌인 일이라고 하고, 비행기에서 점프하는 순간 비프로스트로 도망갔다. 근데 실제 쿠퍼는 비 오는 한밤 중에 뛰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낮으로 나오는 고증오류가 있다. 정장에 선글라스 착용한 톰 히들스턴 모습이 실제 댄 쿠퍼의 몽타주와 빼닮았다
2008년 10월 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익스트림 서프라이즈 코너에서도 소개되었다. 이후 2018년 1월 21일자 800회 특집 서프라이즈 그후 코너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가 나왔다.
xkcd 1400화에 따르면 범인은 토미 웨소고, 이 돈으로 더 룸을 찍었다고 한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자세한 건 더 룸 문서 또는 링크 참조.
스티븐 킹의 소설 쇼생크 탈출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쇼생크에서의 탈옥에 성공한[8] 재소자가 D.B 쿠퍼일 것임이 틀림없다고 앤디 듀프레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말했다는 주인공 레드의 독백이 나온다.
[1] 이 날은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2] 여압 장치가 꺼진 상태에서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 수 있다.
[3] 혹은 일부러 이 지역으로 경찰의 수사 범위를 한정시키려 돈을 묻어둔 게 아닐까.
[4]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티몬과 품바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 과정을 패러디한 장면이 나온다. 티몬과 품바에서 메인 악역으로 자주 나오는 범죄자 퀸트가 돈가방을 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데, 문제는 완전범죄에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낙하산을 펼쳤는데, 낙하산이 돈가방에만 달려있어서 퀸트 본인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돈가방을 티몬과 품바, 그리고 퀸트가 서로 뺏느라고 에피소드 내내 개고생을 하게 된다.
[5] 드라마 로키에선 쿠퍼가 사실 아스가르드 왕자 로키였다(...)는 설정인데, 토르와 내기에 져서 이 짓을 한 것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즉시 비프로스트 타고 아스가르드로 날아갔기 때문에 당연히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6] 당시 쿠퍼가 뛰어내린 지점으로 추정되는 루이스 강 상공에는 폭풍우가 쳤다. 게다가 11월이다.
[7] 방향조정이 불가능한 군용 낙하산을 맸기 때문에 낙하 직후 낙하산을 펼치면 머윈 호수에, 어느정도 활강후 펼치면 루이스 강에 낙하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8] 금요일 오후 정문 교대 시간에 들어오는 교도관들과 나가는 교도관들에 섞여서 운동장에 선 그리는 그걸(라인 파우더) 질질 끌고 그냥 정문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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