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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 금괴 사건 당신이 혹하는 사이2

호크준 2021. 9. 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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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현동 금괴 도굴 미스터리
1945년 5월. 일제 패망 3달 전. 중국에 주둔하는 일본군에게 대본영 지시가 떨어졌다.
‘중국 전역의 금과 보물을 수탈해 복귀하라.’
이른바 ‘긴노유리(きんの ユリ) 작전’. 우리말로 '황금백합작전'이다. 전후복구자금으로 쓸 보물을 중국에서 약탈해 오라는 것이다. 당시 이 작전으로 금괴 수백t, 금동불 36좌, 중국 3대 보물, 다이아몬드 담은 드럼통 등이 일본군 손에 넘어갔다. 약탈 규모만 화차 14량분. 현재 가치가 수십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미션은 중도 실패한다. 맥아더가 이끄는 미 해군이 대한해협을 점령해 일본으로 돌아오는 바닷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보물은 결국 일제 비밀 군사기지인 부산 문현동 '동굴 어뢰 공장'에 묻힌다. 이에 작전 지휘자인 미하라 도시오는 보물이 묻힌 지도를 만들고, 이를 양자로 알려진 조선인 군납업자 최 모 씨에게 건넨다.
그리고 40여 년 후, 우연히 #박정희 전 대통령 이발사 박 모 씨 손에 보물지도가 들어가는데….
이는 작가 정 모 씨가 주장하는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 씨는 이발사 박 씨와 함께 보물이 숨겨진 문현동 지하 동굴을 팠다고 주장하는 장본인이다. 박 씨가 인부들과 함께 10여 년에 걸쳐 지하 굴을 파다 실패했으나, 자신이 뒤 이은 작업으로 보물이 묻힌 곳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런 내용이 담긴 책을 발간했고, 유튜브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수차례 올렸다.

문현동

■ 주택가에 무슨…
서론이 길었지만, 핵심은 분명했다. ‘문현동 동굴에 일제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거다.
취재진은 정 씨 측근, 문현동 주민, 유튜브 등을 수소문해 금괴동굴로 알려진 2곳을 알아냈다. 주민 피해가 우려돼 정확한 주소를 밝힐 순 없지만, 문현동 한 주택가와 부산항 7부두 주변이다.
우선 주택가를 찾았다. 부서진 담벼락에 불 꺼진 야외 뒷간 등 언뜻 봐도 오래된 동네다. 재개발지여서 그런지 인적도 드물고 음침했다. ‘주택가에 무슨 동굴이 있겠느냐’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조기 퇴근에 대한 기대(?)와 달리 진짜 동굴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동네 한 상인의 도움으로 단 10분 만에 동굴을 찾았다. 거짓말처럼 주택 사이에 높은 산언덕이 끼여 있었고, 그 밑에는 철창문으로 된 동굴 입구가 자리잡았다.



■ 히어로 아주머니

철창 사이로 보이는 동굴 내부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옅은 햇빛이 스며든 앞쪽에는 정체불명의 장독과 장판이 놓인 평상이 보였다. 사람이 오간 흔적이 있다는 얘기다. 동굴 안이 건조하고 시원하다 보니 평소 주민 쉼터로 쓰이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유튜버가 자물쇠로 잠긴 입구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인근 주민을 수소문했다. 인적을 찾으러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동굴 앞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는 “잠시 기다려 보라”는 말을 남긴 채 어디선가 열쇠를 들고 왔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근 주민에게서 열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주머니가 열어 준 동굴 내부는 살벌했다. 옅은 햇빛을 지나쳐 다섯 발자국 정도 들어가니 온통 '암흑천지'다. 스마트폰 3대의 손전등 불빛을 비췄으나, 겨우 한두 걸음 앞을 가늠할 정도였다.
동굴은 누가 봐도 자연굴이 아닌 인위적으로 뚫은 것이다. 높이는 2m, 넓이는 5m 정도로 예상 외로 컸다. 동굴 형태는 'U자형'으로 입구에서 출발하니 또다른 주택가가 있는 다른 출입구로 이어졌다. 동굴 중간에는 5~6평 남짓한 방같은 공간 2곳도 연결돼 있었다.
취재진이 떠드는 소리에 인근 주민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얽힌 등골 서늘한 소문도 있다.
"일본군이 한국 사람들을 여기다 가둬놓고 총으로 쏴 죽였다 합디다. 하루는 한 스님이 평상에서 잠을 자다 가위에 눌려서 정체불명의 비명을 질러댔어요. 젊은 한국인 유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몸을 꾹꾹 눌렀다 카더라고."
이날 동굴 문을 열어 준 ‘히어로 아주머니’의 목격담이다. 금괴가 묻혀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민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우리는 동네 유지인 장학회 이사장과 전 주민자치위원장에게서 동굴 실체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방공호로 지어졌다. 당시 작업에 한국인들이 대거 동원됐다고 한다. 다만 금괴 이야기는 이곳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권오준 문현동 장학회 이사장은 “금괴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부산항 7부두 쪽 땅굴”이라고 귀띔했다.


■ 진짜 발견된 #포댓자루
희대의 문현 금괴 미스터리는 실제 부산항 7부두 주변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소문 끝에 금괴가 묻혔다는 부지 소유자 A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실체를 좀 아셔야죠. 들으면 재미있습니다.”
A 씨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복기했다.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관계자들이 청와대에서 쫓겨나니까, 한 정보원이 보물지도를 청와대 이발사 박 씨에게 준 겁니다. 은혜 베풀 듯이 준거죠. 그 보물지도에 적힌 위치가 부산 문현동이었고. 그 양반이 와서 무작정 지하 굴을 파다가, 중간에 작가 정 씨가 합류합니다. 그래도 금이 안 나오니 이발사가 먼저 손을 터는 거죠. 그 뒤에 백 씨 등이 동업자로 다시 참여하고... 아주 복잡합니다.”
취재 결과 두 번째 땅굴도 존재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정 씨와 백 씨 등이 2002년 3월 드디어 땅굴을 찾아낸다. 한 전문 연구기관 도움으로 금괴가 묻혀 있다는 땅굴 스폿을 지정한 것이다. 거짓말로만 여겨졌던 금괴 땅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세간이 떠들썩했다. 동아일보 등 중앙지 보도가 나고 생방송 뉴스도 진행됐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하 굴을 파고 3m짜리 봉 5개를 집어넣자 진짜로 물기둥이 솟았다. 16m 아래 수평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땅굴 안은 정체불명의 포댓자루가 가득했다.

2002년 실제 문현동 땅굴에서 찍은 내부 모습. 왼쪽에 의문의 포댓자루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백 씨 제공
■ 난파된 보물선
허망하게도 의문의 포댓자루는 보물상자가 아니었다. 금괴는커녕 땅굴을 파며 나온 잔해물들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이 땅굴은 이전 청와대 이발사와 정 씨가 십수 년간 파 놓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바친 '보물선'이 '난파'하자 후폭풍이 거셌다. 이때부터 동업자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며 '사기설'이 나돌았다. 전·현직 대통령까지 소환됐다. 정 씨는 동업자 백 씨가 참여정부와 짜고 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 씨 동생은 2015년 부산 사상구 당시 문재인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흉기와 시너를 든 채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백 씨는 정 씨가 대국민 사기극이 탄로나자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호소했다.
법원은 백 씨 손을 들어줬다. 이전에 파놓은 땅굴과 새 땅굴에 비료를 넣고 시간이 흐른 뒤 농도를 비교해 같은 굴임을 밝혀냈다. 결국 정 씨는 구속됐고, 출소한 뒤에도 계속 백 씨 등이 금을 숨겨놨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씨 최측근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악의적 보도의 희생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금이 없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 금이 있다는 자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서 “정 씨는 암살단에 쫓기고 있어서 만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문현동 동굴에 금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투자자가 작성한 부산 남구 일대 지하 어뢰공장 추정 내부도.
■ 진실 혹은 거짓
“30년 전 여러 민간업자부터 시작해 군, 부산시 기동대 등에서 아무리 파도 금이 탐지가 안 되더라고. (금이) 없다는 거지.” 권오준 문현동 장학회 이사장의 증언이다.
문현동은 온갖 금괴 소문에 부산의 ‘엘도라도’라 불렸다. 해방 이후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발굴꾼에 주민들은 몸살을 앓았다. 오래된 집이 흔들리거나 벽에 금이 갔고, 당사자 간 집회도 끊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새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진짜 진실은 온데간데없다.
문현동 금괴 도굴 미스터리의 실체는 여기까지다. 금에 눈먼 이들이 파들어간 동굴만 있을 뿐 금괴 흔적은 없었다

문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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