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여고시절 이수미 별세

호크준 2021. 9. 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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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 1970-80년대에 인기가 많던 가수였고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트로트 3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2. 생애[편집]

1969년 목포 KBS 노래자랑 대회에 나와 5연승을 했고, 뛰어난 가창력이 좋아 가수로 인정받았다. 1971년에 때늦은 후회지만으로 데뷔한 뒤 내 곁에 있어주, 두고 온 고향, 못잊어 등의 앨범을 계속 냈다. 그중 1972년에 낸 '여고시절'이 히트를 쳐 인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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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피습 사건으로 인해 무척 힘든 생활을 지내다 앨범도 다시내면서 겨우 이겨낸듯 했지만, 대마초 관련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3년부터 다시 가수 활동을 재개하며, 개신교 신앙생활을 하며 복음성가 활동도 하기도 했다. 대한가수협회의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3. 사건사고[편집]

3.1. 대천 해수욕장 자해사건[편집]

당시 인기가 절정에 달해있었던 때였는데 1973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천 해수욕장에서 칼을 든 괴한이 촬영 장소에 갑자기 난입해 이수미를 공격했다.

당시 이수미의 인기 탓에 대천 해수욕장 피습 사건을 둘러싼 왜곡된 소문과 이에 따른 파문은 그칠 줄 모르고 커져만 갔다.

경찰은 이수미가 연인에 의해 실연을 당해 자해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이수미가 실제로 피습을 당한 사건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짧은 머리의 남자들이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피해를 막기위해 이수미가 경찰에 거짓 진술을 했던 것이다.

이수미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자해를 했다고 거짓말했다. 피습이 한 순간에 '자해소동'으로 바뀌었다고 당시 엄청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털어놨다.

3.2. 대마초 연루 사건[편집]

1975년에 연예계에 대마초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대마초 사건에 연관 됐다. 그녀는 억울했지만 들어주지 않았고 무기한 방송정지 처분을 받고 사실상 연예계를 떠나게 됐다. 당시에 대마초를 피는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 자리에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

이수미는 "그때 모든 걸 내려놨다. 20년을 아, 소리 한 번 안 내고 지내다 보니 어느 날부터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실어증 환자가 됐던 사연을 고백했다.

4. 수상[편집]

1972 MBC 10대 가수상

1972 TBC 7대 가수상

1975 TBC 최고 여자가수상

1975 MBC 10대 가수상

5. 사망[편집]

2021년 9월 2일,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향년 69세로 사망했다. 5월에 마지막으로 작업한 '별이 빛나는 이밤에'가 유작으로 남게 되었다. 발인날은 9월 5일 오전 11시, 장지는 양평 선영.

이광수는 이수미의 사망 소식을 듣고 SNS에 이수미의 앨범 '여고시절' 사진을 올리고 "편히 쉬세요"라며 애도했다.

6. 여담[편집]

개신교 신자다.


[1] 자신의 생일날에 가까운 연예인들이 집에 놀러왔는데, 그 연예인들이 대놓고 대마초를 꺼내 피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억울하게 자신까지 포함 돼 억울함을 벗어날 수 없었고, 마음 고생이 심해 이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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