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입니다.
지금부터 온갖 네거티브가 난무할 테죠.
안철수 교수를 둘러싼 괴소문 중 하나인 '목동에 사는 음대 출신 30대 여성'은 애교에 속합니다.
더욱 황당무계한 소문이 SNS를 통해 넘실넘실 춤을 출 겁니다. 이번 대선부터 인터넷 실명제도 없어지니까요.
하지만 어떤 네거티브가 판을 친다 해도 이 사람의 손바닥 안입니다.
'선전술의 귀재'로 불렸던 그 사람, 바로 1960년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조직참모 엄창록(嚴昌錄) 씨입니다.
DJ의 조직 참모였던 엄창록 씨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하면, 중앙정보부가 엄창록의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을 분석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따로 보고를 했을 정도입니다.
엄창록이 DJ를 처음 만난 것은 1961년입니다.
그해 DJ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합니다.
그 지역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엄창록을 만나 DJ는 처음 금배지를 답니다.
엄창록의 전략전술은 가히 엽기적입니다. 양담배를 물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지나가다가 여당 후보를 찍으라고 권유합니다.
그러면서 유권자에게 싸구려 담배를 내밉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싸가지를 봤나! 내가 여당 후보를 찍나 봐라!'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테죠. 이건 애교입니다.
여당 후보 이름으로 봉투를 돌리는데, 봉투를 열어보면 단 돈 천 원이 들어있습니다.
그걸 받아본 유권자의 표정이 어떨까요?
당시 가장 귀하다는 고무신을 여당 후보 이름으로 온 마을에 돌립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이고, 고무신이 잘못 전달됐다며 모두 회수해 가기도 합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식당을 여당 후보 이름으로 통째로 빌립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청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여당 후보가 나타날 리 없습니다. 그야말로 식당 안에서는 여당 후보에 대한 욕이 난무하겠죠.
엄창록이 네거티브 선거계의 '전설'로 추앙받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엄창록이 네거티브 선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탁월했다고 합니다. 처음 들르는 집에서 세수를 하는 척하면서 고급비누를 놓고 갑니다.
그 집에서 놓고 간 비누를 잘 쓰고 있을 무렵 다시 그 집을 방문해 거리감을 좁힙니다.
가족사항을 상세히 파악한 뒤 이번에는 DJ 이름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런 식입니다.
'댁의 아드님 취직자리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입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유권자는 어떻게 될까요?
자다가도 일어나 DJ 칭찬에 열을 올릴 테죠. 1970년 9월 29일 DJ는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됩니다.
유진산 당수가 지원한 김영삼 후보를 48표 차로 따돌립니다. 이 때도 엄창록이 큰 역할을 합니다.
DJ 진영은 당시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조직을 파고듭니다.
조직표를 얻으려면 당연히 지구당 위원장을 잡아야 함에도 엄창록은 소외감을 느끼는 말단 대의원을 포섭합니다.
지구당 위원장의 말발이 먹히지 않도록 만든 것입니다.
엄창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정희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1970년 12월 중정부장을 김계원에서 이후락으로 바꿉니다.
DJ는 1971년 1월 엄창록을 자신의 보좌역에 임명합니다. 지략 대결이 벌어지기에 앞서 의문의 사건이 터집니다.
그해 1월 27일 DJ 집에서 폭발물이 터집니다. 중정은 이를 DJ 측의 자작극으로 몰고 갑니다. 그 핵심인물로 엄창록을 지목한 거죠.
엄창록은 자신 뿐 아니라 부인과 가정부까지 중정으로 불려가 오랜 시간 조사를 받습니다.
중정은 이때 엄창록을 본격 회유했다고 합니다. DJ를 떠나 박정희를 도우라는 압박이었겠죠.
이 때문인지 엄창록은 4·27대선을 열흘 앞두고 4월 16일부터 DJ 측 참모회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대규모 공작이 벌어집니다. 바로 지역감정 자극이죠. 영남지역 곳곳에유인물이 뿌려집니다.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이 유인물을 접한 영남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뻔합니다.
DJ 진영에서는 이를 엄창록의 작품이라고 판단합니다. DJ 집 폭발물의 진범이 누군지, 엄창록이 지역감정 자극 공작의 주범인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대선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박정희가 634만 표를 얻어 DJ(539만 표)를 꺾습니다.
엄창록은 1988년 56세의 나이로 숨집니다.
일반인들에게 엄창록은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나라의 선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인 직후 엄창록에게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대선 승리 전략을 한 수 배워오라는 취지였죠.
당시 엄창록의 답변은 이랬답니다.
김대중, 김영삼이 다 나오겠다니 끝난 얘기 아니오. 내게 (전략을) 물을 게 뭐가 있소. 당신네의 당선은 확실한 것 아니오.
엄창록은 스스로를 '선거게릴라'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는 온갖 기상천외한 전략을 구사했지만 소신과 철학은 뚜렷했습니다.
엄창록은 DJ를 처음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공화당의 선거운동은 법을 어기는 범죄 바로 그것입니다.
공무원을 동원해 돈봉투를 살포하고 투개표 조작까지 멋대로 합니다. 관권, 금권에 대응하지 않으면 야당은 정치적으로 살 길이 없습니다.
그의 네거티브는 야당의 씨를 말리려는 공화당에 맞선 생존의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네거티브와는 차원이 달랐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네거티브의 유혹에 빠지면 파멸을 한다는 공식을 만들 때입니다.
엄창록은 1960년대에 필요했던 인물이지, 2012년에 다시 불러내야할 인물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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