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呂運亨·1886~1947)은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 등의 용어에 끼워 맞출 수 없는 융통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이승만(李承晩·1875~1965)·김구(金九·1876~1949)와 같은 우파는 아니었다. “계급투쟁과 유물사관을 배격하고, 무조건적인 국유화보다는 국공유와 사유의 혼합 소유 형태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반(反)볼셰비키 사회주의자였다”는 평가(남시욱)가 나온다. 여운형의 정치노선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탓에 늘 극우·극좌 세력들로부터 각종 테러와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여운형은 “좌우합작과 남북연합의 험난한 길을 걸었던 좌파 독립운동가”(이규태 동국대 연구교수)였다. 여운형은 1886년 5월 25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위로 3남매가 있었지만 일찍 사망해 집안의 경사..